잊혀진 아이들, 미국 입양의 진실…친모는 그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2026-04-24 11:00:59.627+00
생후 10개월에 친모의 동의 없이 미국으로 입양된 이진아 씨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긴 여정을 겪어왔다. 이진아 씨는 "어머니는 내가 한국에서 잘 살고 있을 거라 믿으며 20년을 보냈다. 하지만 내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셨다"고 말했다.
그의 입양 당시인 1982년 3월 25일, 이진아 씨는 생후 10개월 된 아기로 미국의 존 F.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다. 당시 공항에서 그는 다른 네 명의 아기와 함께 미국인 입양모의 품에 안겼다. 유년 시절에는 매사추세츠의 해변에서 즐거운 시간과 겨울철의 스키와 스케이트를 통해 행복한 일상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입양 사실을 다섯 살 때 양어머니로부터 알게 되었다. 그 말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외모가 다른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입양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이 어디인지 궁금해졌고, 그때부터 양어머니에게 수많이 물어보았다"며 당시의 심경을 회상했다.
그는 11살 때 양아버지가 정신질환을 앓기 시작하며 가정이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이는 그의 삶에 가장 슬픈 시기를 가져왔다. "이혼후에도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친모와 함께한 시간은 4~5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친모가 나를 돌보기에 힘들다고 판단하여 입양을 결심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 바다가 너무 넓고 깊게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입양에 관한 문서에 따르면 이진아 씨는 1981년 9월 수원의 아동복지시설 '경동원'에서 약 3개월 머문 후, 홀트아동복지회에 의해 해외입양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친모의 동의는 받지 않았으며, 그는 '버려진 아이'라는 분류에 속해 있었다. 이진아 씨는 "그의 입양 서류는 쉽게 작성되고 수정될 수 있는 사항이었다"며, 이러한 절차가 사업 거래처럼 되어버린 점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가 친모를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는데, 이진아 씨는 "친모는 내가 미국에 보내진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후 한국에서 자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들의 만남은 짧았고, 끝자락에서는 "다시 연락하지 말라"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슬픔과 혼란 속에서 그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감추어야 했다.
이진아 씨는 그 이후로 친모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각자의 가정이 있는 상황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그는 "엄마,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괜찮아요"라고 말하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 이후 이진아 씨는 한국을 총 네 번 방문하며 고향을 느끼고 있다. 그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즐기며 올 여름에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입양 가정으로 아이를 보낸 한국의 친부모들에게 "우리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더 이상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