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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폭염 속 에어컨 필요성과 전기료 부담 사이의 갈등

2026-06-01 04:30:54.258+00

유럽 전역에서 시작된 기록적인 폭염이 영국의 주택 환경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런던의 5월 기온이 35도를 넘어서는 등 폭염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에어컨이 거의 없는 영국 주택 구조의 취약성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와 함께 에어컨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전기료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최근 영국 기상청에 따르면, 런던에서 5월 26일 하루 최고 기온은 35.1도에 달했다. 이는 이전에 세운 34.8도의 기록을 하루 만에 경신한 것으로, 영국의 5월과 봄철 최고 기온 기록이 연속으로 깨진 것이다. 과거 1922년과 1944년에 각각 기록된 32.8도와 비교해 보면, 그 심각성이 잘 드러난다.

문제는 영국의 주거 구조가 이러한 극심한 더위를 감당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영국 전체 주택 중 에어컨이 설치된 비율은 5% 미만으로, 신규 주택에서도 냉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2021년 개정된 건축 규정은 '수동 냉방'을 우선시하여 에어컨 설치가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한동안 에어컨이 과소비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환경적 부담과 높은 전기 요금 때문 에어컨을 선택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매년 폭염이 일찍 찾아오고 강도도 세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영국의 가구에서 에어컨을 보유하고 있는 가구 수는 최근 3년 간 두 배 이상 증가하여 지금은 400만을 넘었다. 이는 더 이상 에어컨이 낯선 기기가 아니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에어컨 사용 증가로 인한 전기요금 부담도 만만치 않다. 가디언에 따르면, 폭염 시 에어컨 사용 시간이 증가하면 주간 전기요금이 평소 몇 파운드에서 40파운드 이상으로 급등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국 정부의 기후 자문 기구인 기후변화위원회(CCC)는 주거 냉방 문제를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CCC는 지구 평균 기온이 2도 상승할 경우 영국 주택의 약 22%가 능동형 냉방 장치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오래전의 기후 변화 없이 설계된 주택들이 현재와 미래의 기후 조건에 적합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폭염의 확산은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AP통신에 따르면, 고기압이 뜨거운 공기를 억제하는 '열돔' 현상으로 인해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서유럽 전체의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 프랑스의 일부 지역에서는 기온이 36도에 달하고, 스페인 세비야에서는 38도에 이를 정도로 치솟았다. 이러한 폭염으로 물놀이 사고와 온열 질환으로 인한 사망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폭염은 전력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낮에는 태양광 발전량이 급증하지만, 해가 진 뒤에도 냉방 수요가 지속되면서 전력 가격이 오르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2025년 6월 EU의 태양광 발전량이 최대 45TWh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전년 대비 22%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풍력 저하와 야간 냉방 수요가 겹치면 전력 공급 불균형이 발생하고, 저녁 시간 전력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이 관찰되고 있다.

또한 원자력과 화력 발전소도 폭염에 취약해질 수 있다. 수온 상승으로 인한 냉각수 사용 제한 등으로 발전량이 감소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더욱 잦아지면 유럽 내 전력 수급 불균형 문제는 지속적으로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기후 전문가들은 에어컨 보급 확대뿐만 아니라, 건축물 설계에서 수동 냉방 방안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차양, 단열 강화, 창문 배치, 녹지 확대 등이 필요하고, 병원이나 요양시설, 교육기관 등 취약계층 거주지에는 능동형 냉방 장치가 필수적이라는 의견이다. 또한 고효율 히트펌프와 태양광 패널을 통한 새로운 냉방 기술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유럽의 여름은 점점 빨리 도래하고 있으며, 이는 주거, 전력, 복지, 보건 등 다양한 분야에 구조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에어컨과 관련된 논쟁은 단순한 소비 문제를 넘어, 기후 위기를 대응하기 위한 주거 환경의 재설계를 요구하는 시대적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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